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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
너와 헤어져 돌아오는
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.
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
두 점을 치는 소리
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
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.
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
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,
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
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.
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
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
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
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.
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
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
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.
가난한 사랑노래 -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, 신경림
신경림 시인이 1988년 발표한 시집 <가난한 사랑노래>에 실린, 시집과 같은 제목의 시에서 작가는 원래 "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" 대신 "육중한 탱크 굴러가는 소리"로 썼지만, 출판사가 이를 기계로 바꿨다고 한다. 시인은 이를 안타까워 하다, 바뀐 표현 덕에 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며 스스로를 위안한 적 있다.
신경림 선생(1935 ~ 2024)의 명복을 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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